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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22년 신춘문예 당선작 동화부문] 농구의 신 - 최정희

Tomitom 2022. 11. 17.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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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의 신 - 최정희

■ 동화골대 아래에서 민우가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나는 공을 달라는 민우의 신호를 무시하고 그대로 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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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의 신- 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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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대 아래에서 민우가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나는 공을 달라는 민우의 신호를 무시하고 그대로 슛을 했다. 림을 맞고 나온 공이 맥없이 떨어졌다.

“야, 나한테 줬어야지.”

민우가 나를 내려다보며 화를 냈다. 나는 민우를 올려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내 맘이다. 아야!”

감독님이 내 머리에 알밤을 먹였다.

“신우현, 네 위치를 지켜. 득점 욕심부리지 말고.”

억울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민우가 학교에 나타난 건 일 년 전이다. 오학년에 거인이 전학을 왔다고 소문이 났다. 감독님은 싫다는 민우를 설득해서 농구부에 들어오게 했다. 나는 농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민우에게 농구 용어나 규칙을 가르쳐 주고 같이 연습을 했다. 어느새 민우는 나를 제치고 농구부 득점왕이 됐다. 6학년이 되고 바라고 바라던 주장이 되었지만 기쁘지 않았다. 민우 때문에 나는 실속 없는 껍데기 주장이 된 기분이다.

만약 내가 민우만큼 키가 컸다면, 아니 지금보다 5센티미터만 더 컸더라면 득점왕 자리를 지켰을 것이다.

민우는 키만 크다. 175센티미터다. 평소에는 쓸데없이 걸리적거리는 키가 농구장에서는 다르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편에게는 위협적이고 같은 편에게는 든든하다.

나는 뭐든지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키 크는 건 안 됐다. 먹기 싫은 우유와 콩나물을 먹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성장호르몬이 나오는 시간이라는 10시부터 잠을 잤는데도 키는 겨우 147센티미터다. 다른 애들이 쑥쑥 자랄 때 내 키는 정지해 있는 것 같다. 넘쳤던 자신감은 방전된 배터리처럼 바닥이다.

속상하고 억울한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집에 와서도 화는 풀리지 않았다. 침대에 벌렁 누웠는데 등이 너무 아파서 ‘윽!’ 소리가 나왔다. 농구공이 침대에 있다는 걸 깜빡했다.

농구를 시작한 이후로 나는 집 안에서도 농구공을 들고 다닌다. 집에서 드리블이나 슛을 할 수는 없지만 옆에 두고 만지며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다. 오늘은 농구공도 걸리적거린다.

게임을 하려고 휴대폰을 켰는데 화면에 처음 보는 앱이 떴다. 이름이 ‘농구의 신’이다. ‘농구의 신’이 뭐지? 지금은 농구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게임을 시작했는데 화면에 뛰어다니는 농구화가 나타나서 신경이 거슬렸다.

‘농구의 신’ 앱을 삭제했다. 금세 다시 생겨났다. ‘왜 이러지?’ 하고 노려보는데 앱이 저절로 열렸다. 농구화를 사는 곳과 파는 곳만 있었다. 농구의 신이 농구를 잘하게 해준다거나, 신처럼 농구를 잘하는 사람들의 모임인가 했는데 어이가 없었다. 농구를 하는 신발, 그러니까 농구화라는 뜻인가 보다. 어쨌든 나하고 상관없는 앱이었다.

휴대폰을 내려놓으려는데 화면에 농구화 사진이 나타났다.

흰색의 평범한 모양이다. 사이즈는 ‘프리(free)’, 가격은 ‘무료 드림’이라고 쓰여 있다. 양말도 아니고 신발에 크기가 없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보이킨스 농구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살아있는 농구화가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나는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농구화 사진 아래 깨알 같은 글씨로 쓰여 있는 ‘상세정보’는 건너뛰고 채팅창을 열었다. 농구화가 나를 선택했다는 과장된 말에 속은 것은 아니다. 보이킨스라는 이름을 보자 눈이 번쩍 뜨였기 때문이다.

NBA 단신 가드였던 보이킨스는 나의 우상이다. 키가 작은 나도 농구선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사람이다. 노력만 한다면 말이다.

판매자 닉네임을 보고 픽, 웃음이 났다.

‘뭐야? 마이클 주단!’

‘마이클 조단’이 아니라 주단이라니. 채팅창에 글을 썼다. 농구화에 대해 물어보기만 하려고 말이다.

―안녕하세요? 님이 올리신 농구화에 관심 있습니다. 왜 보이킨스 농구화예요?



글 옆에 있는 점이 없어지지 않는다. 일 분이 십 분처럼 길게 느껴졌다. 이 분, 삼 분, 그래도 읽지 않는다. ‘읽어라.’ 내 맘을 안 것처럼 점이 없어졌다.



―7시 정각에 학교 체육관 앞에서 만나요.



농구화에 대해 물어보려는 거였는데 다짜고짜 약속 시간과 장소를 말하며 만나자고 한다. 나를 아는 사람인가? 연습 시간을 어떻게 알았을까?

수업 시작 전과 방과 후에는 농구부 전원이 모여 훈련을 한다. 하지만 저녁 7시는 나 혼자 연습하는 시간이다. 나는 남들보다 키가 작으니까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한다. 보이킨스처럼 말이다. 165센티미터인 그는 노력을 통해 NBA에서 가장 우수한 가드가 됐다.

학교 체육관으로 가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체육관 앞에 모자를 눌러 쓴 사람이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중학생인 것 같은데 마스크 위로 눈만 겨우 보였다.

“마이클 주단님?”

“…….”

“감사합니다.”

가방을 받으며 얼결에 인사를 했는데 마이클 주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뜻 본 눈에 살짝 눈물이 맺힌 듯했다. 하지만 돌아서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체육관으로 들어와 불을 켰다.

기대하며 가방을 열었다. ‘헉’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농구화는 사진으로 본 것보다 더 더러웠고 아주 낡았다. 무엇보다 너무 컸다. 어디에도 보이킨스 농구화라는 표시가 없었다. 상표명도 아니고 보이킨스의 사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마이클 주단인가 뭔가가 나한테 농구화를 버렸나 보다. 짜증이 확 났지만 꾹꾹 눌렀다. 체육관에 왔으니 연습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농구화가 들어 있는 사물함 열쇠를 갖고 오지 않았다. 당연히 보이킨스 농구화를 신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는 수없이 왼발을 농구화에 넣었다. 컸다. 오른발을 넣었다. 역시 컸다. 발을 빼려는 순간, 농구화가 내 발을 잡았다. 신발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변신 로봇이라도 된 것 같았다.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내 발에 안성맞춤으로 달라붙었다. 크기만 달라진 것이 아니었다. 무지개색으로 색깔도 확 바뀌었다. 어리둥절해서 보고 있는데 농구화 바닥에서 번쩍하고 빛이 났다가 없어졌다.

‘농구화가 진짜 살아있어.’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때, 체육관 문이 열리고 민우가 들어왔다. 뜨거워졌던 가슴이 민우를 보자 가라앉았다.

“꼬마, 연습 안 하고 뭐 하냐?”

민우는 꼬마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었다. 치사하게 남의 약점을 잘도 건드린다. 아까는 감독님 때문에 참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전봇대, 넌 왜 왔냐?”

가시가 들어간 내 말을 민우가 맞받아쳤다.

“너 연습 잘하나 보러 왔다.”

공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농구공을 세게 던졌다. 공은 그대로 날아가 민우 다리를 맞혔다. ‘퍽!’ 소리가 나고 민우 무릎이 꺾였다. 쌤통이다. 이번에는 민우가 공을 주워서 나를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공을 잡고 골대를 향해 뛰어갔다. 가뿐하게 올라가서 골을 넣었다. 농구화에 날개라도 단 것 같았다.

민우가 나와 공을 번갈아 봤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신우현! 어떻게 된 거야.”

“뭐가? 나 원래 잘했거든.”

말은 그렇게 했지만 쿵쿵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게 가슴이 뛰었다.

“신발에 용수철이라도 달렸냐? 슝슝 올라가는데?”

나는 뜨끔했다. 속마음을 감추려고 오히려 화를 내며 말했다.

“야, 신발이 뭘? 내가 점프력이 좋아지니까 배 아프냐?”

민우는 멀대처럼 서서 눈을 끔뻑거렸다.

“뭔가 다른데. 어, 그 농구화 처음 보는 거네. 아주 낡았는데?”

“낡았다고?”

“응. 누렇게 색이 바랬고 너한테 커 보여.”

나는 신발을 보았다. 분명 무지개색으로 빛나고 있다. 민우 눈에는 변신한 게 보이지 않나 보다. 그게 더 마음에 들었다.

체육관 불을 끄고 밖으로 나왔다. 경비원 아저씨가 문을 잠글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어두운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내 머릿속은 농구화 생각으로 가득 차서 민우가 옆에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민우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손을 치우라고 하려는데 민우가 불쑥 말했다.

“부럽다.”

밑도 끝도 없이 부럽다니,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놀리는 새로운 기술인가 보다.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민우를 올려다봤다.

“넌 농구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데다 선생님하고 친구들이 다 좋아하잖아.”

풀이 죽은 민우의 말에 당황한 건 나였다.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처음 농구를 시작할 때 성적이 떨어지면 농구부를 탈퇴하겠다고 엄마와 약속을 했다. 그래서 기를 쓰고 공부를 하고 있지만 아주 잘하는 건 아니다.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그것도 민우가 나를 부러워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민우, 뭐냐? 잘난 척이냐?”

센 척하며 말했지만 내 말에 박힌 뾰족하던 가시는 무디어져 있었다.




농구부 전체 연습 시간, 쩌렁쩌렁한 감독님 목소리가 체육관을 가득 채웠다.

“민우, 자세를 낮춰. 인수는 다리를 더 벌려야지. 어깨보다 더.”

내 신경은 온통 농구화에 가 있어서 집중이 안 됐다. 빨리 슛을 하고 싶은데, 삼십 분 넘게 스트레칭과 드리블 등 기본자세 연습만 하고 있다.

“우현아, 정면 봐야지.”

생각이 흩어지자 시선이 떨어졌나 보다. 감독님은 독심술이라도 하는 것처럼 정확하게 문제를 짚어낸다.

“이번에는 두 명씩 짝지어서 마주 본다.”

나는 재빨리 윤호에게 갔다. 바로 옆에 있던 민우하고 짝을 하기 싫어서였다. 어두운 운동장에서 부럽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는 민우가 더 불편해졌다.

“왼손, 오른손, 하나, 둘, 셋!”

감독님의 구호에 맞춰서 패스 연습을 했다.

이어서 골대 앞에 줄을 섰다. 내가 슛을 할 차례다. 무릎을 굽혔다가 펴는데 몸이 가볍게 올라갔고, 내 손을 떠난 공이 림 안으로 쏙 들어갔다. 짜르르한 느낌이 온몸에 흘렀다.

감독님이 나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농구부원들에게 말했다.

“주장 플레이 봤지? 키가 작아도 완벽하게 할 수 있잖아.”

너무 듣고 싶던 말이었다. 기뻐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여유 있게 웃으며 말했다.

“감독님, 농구는 신장으로 하는 게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거라고 보이킨스가 말했잖아요.”

“그 말은 아이버슨이 했거든.”

감독님이 웃으며 내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농구화가 생긴 다음 농구가 더 좋아졌다. 몇 시간씩 연습을 해도 힘들지 않았다. 보이킨스가 응원하며 함께 뛰는 것 같았다.

나는 연습 시간과 장점, 단점, 수정사항을 기록하는 훈련 일지를 매일매일 썼다. 일지를 쓰며 나를 돌아보고 효율적으로 연습을 하자, 내게도 느껴질 만큼 실력이 부쩍 올라갔다.

“우현아, 농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야. 다섯 명이 서로 도와서 기회와 찬스를 만들어줘야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역할을 제대로 했을 때 시합도 잘 풀리는 거야.”

감독님 말에 기계적으로 ‘네!’라고 대답을 했다. 머리로는 알 것 같았지만 마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정쩡한 실력인 선수들만 모여 있는 것보다 아주 잘하는 선수 한 명이 있는 게 나을 때도 있지 않을까? 그럴 수 있다면 그 한 명이 나였으면 좋겠다.

드디어 농구 대회가 시작되었다.

예선전은 순조롭게 치러졌다. 여유 있게 본선에 올라갔지만 나는 편안하지 않았다. 민우를 향한 마음이 꼬이고 얽혀서 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결승전 날이 되었다.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각오를 다잡았다.

서둘러 농구화에 발을 넣었다. 이상했다. 농구화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야, 변신해야지.’

애가 타서 식은땀이 흘렀다.

다른 아이들은 이미 코트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탕, 탕, 탕, 탕’ 체육관에 가득 들리는 공 튕기는 소리가 나를 때리는 것만 같았다.

경기 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혼란스러웠다. 짧은 머리카락이 모조리 일어서는 것 같았다.

“야, 신우현, 어서 나와. 얼빠진 사람처럼 왜 그러고 있어?”

감독님이 내게 다가왔다. 배가 아프다고 하려고 했다. 그런데 감독님 얼굴을 보니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신발이 안 맞아요. 오, 오늘은 못 뛰겠어요.”

나는 겨우 중얼거렸다. 감독님은 버럭 화를 냈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빨리 나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농구화에 발을 넣어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농구의 신’ 앱에 농구화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비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건 그냥 농구화가 아니니까 말이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냈다. 앱을 열어서 처음에는 읽지 않고 넘어갔던 상세정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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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떠날 때도 농구화 마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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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지금 떠날 때라고 생각하는 건가? 안 된다.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움직이지 않겠다니 미칠 것 같았다.

‘한 달만, 아니 한 시간만 더 있어줘. 제발!’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말하는데 ‘농구의 신’ 채팅창이 자연스럽게 스르륵 열리더니 질문이 떴다.

―정말 보이킨스 농구화예요? 무료 맞아요?



나는 ‘아니요’라고 쓰려고 했다. 이걸 막으면 농구화가 내 옆에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저절로 글자가 쓰였다.



―네. 맞아요. 오늘 오후 4시에 전철역 1번 출구 앞에서 만나요.



‘농구의 신’ 앱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강한 빛이 났다.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앱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농구화는 나를 떠나려 하고 있다. 어쩔 수 없다. 농구화를 넣기 위해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 무지갯빛 카드가 들어 있었다.



보이킨스 농구화의 친구

‘신우현’

코끝이 찡했다. ‘고마웠어. 친구!’ 나는 진심을 담아 말하고 마지막으로 농구화를 꼭 안아 보았다. 서운했지만 언제까지나 농구화에 의지할 수는 없다. 스스로 서야 하는 순간이 생각보다 일찍 왔을 뿐이다. 카드를 주머니에 넣었다. 든든했다. 사물함에서 원래 신던 농구화를 꺼내 신고 운동화 끈을 꽉 묶었다.

우리 팀은 손을 모아 ‘파이팅!’을 외쳤다. 버저가 울리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상대는 만만치 않았다. 우리의 공격은 상대편의 수비에 번번이 막혔다. 압도적으로 우리 팀을 제압했다. 2쿼터가 끝났을 때는 24 : 15로 9점이나 차이가 났다. 우리는 기운이 빠졌지만 노련한 감독님은 침착했다.

“괜찮아, 서로 믿고 자신 있게 해. 우리는 하나야.”

감독님 말씀이 비로소 가슴으로 이해되었다. 민우에게 다가가서 진심을 담아 말했다.

“잘해보자. 전봇대.”

민우가 내 말에 웃으며 말했다.

“그래. 꼬마.”

같은 단어라도 느낌이 달랐다. 꼬마라는 말이 놀리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애칭처럼 느껴졌다. 내가 키가 작은 것은 사실이고 농구를 하는 데 부족한 부분인 것은 맞다. 꼬마의 든든한 힘을 제대로 보여줘야겠다.

우리는 땀으로 젖은 등을 서로 두드리며 격려를 주고받았다.

“오른쪽 열렸어. 막아.”

내가 뒤에서 소리쳤다. 윤호가 수비에 성공했다. 나는 악착같이 상대 팀을 막았고 잡은 공을 민우에게 주었다. 민우의 골밑슛이 성공했다. 조금씩 점수 차이가 좁혀졌다. 우리가 착착 맞아들어가자 눈에 띄게 상대 팀이 흔들렸다. 이제 마지막 쿼터, 8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분위기는 우리 팀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힘이 났다. 거의 따라잡았다. 34 : 33, 이제 단 1점 차이다.

민우가 바닥에 넘어졌다. 상대 팀에 집중적으로 견제를 당했다. 두 명이 전담으로 수비하느라 민우 옆에 바짝 붙어 있었는데, 공을 잡으려는 순간 옆으로 파고든 상대의 머리와 민우의 옆구리가 세게 부딪혔다. 부상으로 나간 민우의 빈자리가 허전하게 느껴졌다.

이제 11점 3초가 남았다. 인터셉트! 나는 상대편 17번 선수 옆으로 파고들어 공을 가로챘다. 성공이다. 관중석에서 ‘와아!’하는 소리가 파도처럼 일었다.

스틸 후에는 더 빠르게 뛰어야 한다. 몸을 꺾어서 상대편 골 쪽으로 돌아섰다. ‘탁! 탁!’ 드리블을 하며 앞으로 나갔다. 손바닥에 공이 와서 닿는 감촉이 좋았다. 뭔가 느낌이 온다.

“신우현, 파이팅!”

민우의 응원 소리가 들렸다. ‘내 몫까지 열심히 해’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공을 잡고 멈춰 섰다. 공을 넣으면 역전이다. 주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골대만 보고 온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

농구장 안 모든 것이 정지했다. 공기마저 멈춘 것 같은 시간, 내 손을 떠난 공이 허공에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갔다. 림 안으로 공이 빨려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휘리릭!’ 종료 휘슬이 불었다. 아! 짜릿한 버저비터¹였다.

 

 

<당선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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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동안의 12월,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며 두꺼운 책과 긴 영화를 보았습니다.

작년에는 빨간 머리 앤이었고 올해는 제인 오스틴이었어요. 19세기 영국에서 살았던 작가를 떠올리며 원작 소설을 쌓아놓고 영화 리스트를 찾아서 읽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12월을 보내고 나면 예년처럼 다시 희망의 1월을 시작하는 힘이 나기를 기대하면서요.

제인 오스틴의 시대를 거스른 선택과 여성 작가로서의 당당함에 대해 다시 떠올려봅니다. 공동의 거실에서 글을 쓰던 그녀의 작은 티테이블에 비하면, 제 책상은 터무니없이 넓고 큽니다.

친구들이 준 축의금을 따로 모아서 엄마가 사준 책상이었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니 작은방을 차지하고 있던 낯선 책상에는 엄마를 닮은 큰딸이 꿈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을 겁니다. 다른 가구들을 바꾸면서도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 책상에 앉아 전화를 받았어요. 수없이 상상했던 순간이라 의연하게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떨렸습니다. 짜릿했어요. 버저비터로 골을 넣은 동화 속 주인공의 마음이 이랬을까요?

지금은 훤칠한 청년으로 자랐지만, 어렸을 때 유난히 작은 키로 운동장을 뛰어다니던 아들들 덕분에 농구를 소재로 동화를 쓸 수 있었습니다.

글을 잡고 있던 짧지 않은 시간, ‘쓰고 싶다’와 ‘써야 한다’는 생각만 길었습니다. 이제부터 진짜 열심히 써보겠다고 다짐하며 지금도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응원해 준 동창모와 동서문학회 선생님들, 간절함을 읽고 선택해 주신 심사위원님, 언제나 믿어주는 엄마, 나만의 방을 만들어 준 남편, 십자가 선물 같은 아들 현우와 선우…. 덕분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 최정희. 1968년 서울 출생. 대학원에서 독서교육학을 전공하고 현재 독서와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2005년 수필로 등단했다.

 

<동화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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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독자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린이다. 어린이의 삶을 관찰하고 흥미롭게 그려내는 것은 동화의 일이 아니다.

투고작 가운데 환상적 장치를 내세운 의인 동화가 많았는데 섣부른 의인화로 비인간 존재에 마음을 불어넣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어린이가 지닌 익숙한 생활의 감각과 거리가 먼 환상적 설정은 장식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동화는 늘 ‘동화답다’는 얕은 통념들과 싸워야 한다. 이는 어린이가 아이다움이라는 일방적인 기대를 깨뜨리며 성장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최종심에 오른 세 편의 동화는 어린이의 감정을 중심에 두고 정중하게 대하는 작품들이었으며 믿음이 가는 충실한 밀도를 갖추고 있었다.

‘개를 무서워하는 아이’는 저마다 무서워하는 것이 있는 세 아이가 사흘 동안 한 집에서 지내며 날카로운 각자의 공포를 부드럽게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서로 다른 두려움을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마음을 모으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하지만 중심인물인 가영이가 개에게 느끼는 공포만 일방적으로 그려지고 개가 가영이에게 느끼는 감정은 친밀함 일색이었다. 개도 가영이가 두려울 테고, 관계는 양방향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안녕 바닐라’는 교실 안에서 달팽이를 키우면서 닫힌 말문을 여는 나은이와 같은 조 민혁이의 동반 성장을 다룬다. 두 어린이가 맺는 관계와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돋보였다. 그러나 한 생명의 삶과 죽음이 성장의 지렛대로만 가볍게 다뤄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초반의 묵직함을 끝까지 지니고 갔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두 편 모두 동화에서 동물을 그리는 태도를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농구의 신’은 농구를 잘하고 싶지만 키가 빨리 자라지 않아 속상한 우현이가 중고거래로 특별한 신발을 얻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그렸다. 어린이의 욕망을 존중하면서도 성취는 거래될 수 없다는 것을 담담하게 말한다. 중의적으로 쓰인 ‘신’은 주인공의 기대를 배반하지만 그것이 꿈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우현이가 신발과 분리되는 과정에서 갈등과 노력이 충분히 다뤄져야 하는데 압축해서 서둘러 전개한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

그러나 사건을 사건으로 이어받으면서 현장의 생생함을 놓치지 않는 역량과 소재의 경쾌함을 스타일로 소비하지 않는 작가의 힘이 느껴져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지금의 거친 부분들을 날카롭게 가다듬어 두터운 어린이의 고민을 깊게 이해하는 작품을 써주시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김지은·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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